중세 유럽 귀족들은 경비병을 몇 명 두웠을까?
중세 유럽의 군사 체계는 봉건제를 기반으로 했으며, 귀족의 작위와 영지 규모에 따라 유지할 수 있는 군사력이 크게 달랐다.
완벽한 고증보단, 판타지 창작용으로 정리했으니 감안하여 봐주길 바란다.

귀족 작위별 군사력
왕 (King)
왕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다.
상비군으로 300-800명의 왕실 가신단과 경비병을 두었으며, 봉신들로부터 징집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은 10,000-30,000명에 달했다.
14세기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약 24명의 왕실 궁수를 두었고, 리처드 3세는 138명의 예맨을 보유했다.
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12세기 말 약 3,000명의 병력을 단기간에 동원할 수 있었으며, 전쟁 시에는 7,000-10,000명까지 확장했다.
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Yeomen_of_the_Guard
Yeomen of the Guard - Wikipedia
From Wikipedia, the free encyclopedia Military unit The King's Body Guard of the Yeomen of the Guard is a bodyguard of the British monarch. The oldest British military corps still in existence, it was created by King Henry VII in 1485 after the Battle of B
en.wikipedia.org
공작 (Duke)
공작은 준독립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대귀족으로, 상비군 30-120명과 기사 10-30명을 거느렸다.
1475년 프랑스 원정에서 클래런스 공작 조지는 120명의 맨앳암즈와 상당수의 궁수로 구성된 가장 큰 레티뉴 중 하나를 이끌었다. 최대 징집 병력은 1,000-3,000명 수준이었다.
후작 (Marquis/Margrave)
변경백이라고도 불린 후작은 국경 지역을 방어하는 책임을 맡았다.
상비군 20-50명과 기사 5-15명을 보유했으며, 최대 500-1,500명을 징집할 수 있었다. 이들은 일반 백작보다 높은 지위와 더 큰 자율성을 가졌다.
백작 (Count/Earl)
가장 일반적인 고위 귀족인 백작은 상비군 12-40명의 가신단을 유지했다.
가정용 경비병은 통상 12-24명이었으며, 귀족의 친척과 충성스러운 기사들로 구성되었다.
백작은 3-10명의 기사를 거느렸고, 최대 300-1,000명을 징집할 수 있었다.
남작 (Baron)
최하위 고위 귀족인 남작은 영지 규모에 따라 군사력이 크게 달랐다.
상비군 5-15명과 기사 1-3명을 두었으며, 최대 50-300명을 징집할 수 있었습.
작은 영지를 가진 남작은 경비병이 소수에 불과했지만, 부유한 남작은 더 많은 병력을 유지했다.
자작 (Viscount)
백작을 보좌하던 자작은 상대적으로 작은 군사력을 보유했다.
상비군 10-20명과 기사 2-5명, 최대 징집 병력은 100-500명 수준이었다.
자작은 원래 관리직에서 유래했으며, 영국에서는 비교적 늦게 도입된 작위다.
Crusader Kings 2 게임에서는.
- 남작: 병사 100-300명.
- 백작: 병사 400-1000명. 30-50%는 남작 봉신들한테서 나옴.
- 공작: 병사 1200-2400명. 40-60%는 백작과 남작 봉신들한테서 나옴.
- 왕: 병사 2500 - 10000명. 50-75%는 공작, 백작, 남작 봉신들한테서 나옴.
중간 요약
| 작위 | 상비군(평시) | 징집군(전시) |
| 왕 | 왕실 가신단과 경비병 300~800명 | 7,000-30,000명 |
| 공작 | 상비군 30-120명, 기사 10-30명 | 1,000-3,000명 |
| 후작 | 상비군 20-50명, 기사 5-15명 | 500-1,500명 |
| 백작 | 상비군 12-40명, 기사 3-10명 | 300-1,000명 |
| 남작 | 상비군 5-15명, 기사 1-3명 | 50-300명 |
중세 유럽 주요 도시와 인구
이탈리아 도시들
중세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도시화된 지역이었습니다. 파리를 제외하면 유럽 최대 도시들이 이탈리아에 집중되어 있었다.
- 피렌체 (Florence): 1300년경 인구 120,000명으로 정점에 도달했으며, 흑사병 이후 15세기에는 약 60,000명으로 감소했다. 도시의 모직 산업이 약 25,000명을 고용했다.
- 베네치아 (Venice): 13-14세기에 약 100,000명의 인구를 유지했으며,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.
- 밀라노 (Milan): 14세기에 약 100,000명, 도시 인구 80,000명에 농촌 인구를 포함하면 15,000명의 군대(기사 3,000명, 보병 12,000명)를 동원할 수 있었다.
- 제노바 (Genoa): 14세기 약 100,000명, 15세기에는 80,000명 수준이었다.
- 나폴리 (Naples): 14세기 약 120,000명에서 15세기에는 150,000명으로 증가하여 유럽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.
프랑스
- 파리 (Paris): 1328년 약 200,000명으로 서유럽 최대 도시였으며, 15세기 백년전쟁 중 100,000명까지 감소했다가 1500년경 다시 회복했다.
- 브뤼헤 (Bruges): 1300년경 50,000명 이상의 인구로 플랑드르 지역의 주요 무역 중심지였다.
- 겐트 (Ghent): 14-15세기에 약 60,000명을 유지했다.
신성로마제국
- 쿨른 (Cologne): 1340년경 35,000-40,000명으로 독일 최대 도시였으며, 15세기에도 약 40,000명을 유지했다.
- 뉘른베르크 (Nuremberg): 14-15세기에 약 20,000명의 인구를 가진 주요 무역 도시였다.
잉글랜드
- 런던 (London): 1300년경 80,000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, 흑사병 이후 15세기에는 50,000-60,000명으로 감소했다.
- 요크 (York): 14세기에 10,000-12,000명, 15세기에는 약 8,000명이었다.
- 브리스톨 (Bristol): 14세기 9,000-10,000명에서 15세기 10,000명 수준이었다.
- 노리치 (Norwich): 14세기 5,000-10,000명, 15세기에는 약 8,000명이었다.
14세기 당시 중세 유럽 주요도시의 인구는
- 파리, 제노바, 플로렌스, 베니스: 약 10만
- 낭트, 브루쥬, 밀란, 볼고나, 로마, 나폴리, 팔메로, 콜롱, 퀠른: 5만 안밖
- 런던, 보르도, 세르비아, 리옹, 마르세유, 몽트피에, 바르셀로나, 톨레도, 시에나, 피사, 및 여러 중소 이탈리아 도시: 2만 안밖
- 아주 부유한 도시: 10~20만
- 일반 도시: 5~10만
- 소도시: 2만아래
인구별 징집 가능 병력
중세 도시와 영지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은 인구의 일정 비율로 계산되었다.
상비군 (0.5-1%)
평시에 유지할 수 있는 전문 병력으로,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.
- 인구 10,000명 도시: 50-100명
- 인구 40,000명 도시: 200-400명
- 인구 100,000명 도시: 500-1,000명
- 인구 200,000명 도시: 1000-2,000명
전문 병력 (2-3%)
전쟁 시 동원 가능한 훈련된 병력으로, 기사, 맨앳암즈, 전문 궁수 등을 포함.
- 인구 10,000명: 200-300명
- 인구 40,000명: 800-1,200명
- 인구 100,000명: 2,000-3,000명
- 인구 200,000명: 4,000-6,000명
최대 징집 (10-15%)
긴급 상황(도시 방어)에서 동원 가능한 최대 병력으로, 농민 징집병을 포함하지만 장기간 유지는 불가능.
- 인구 10,000명: 1,000-1,500명
- 인구 40,000명: 4,000-6,000명
- 인구 100,000명: 10,000-15,000명
- 인구 200,000명: 20,000-30,000명
최종 요약
| 작위 | 상비군(평시) | 징집군(전시) | 도시규모 |
| 왕 | 왕실 가신단과 경비병 300~800명 | 7,000-30,000명 | 5만~20만 대도시 |
| 공작 | 상비군 30-120명, 기사 10-30명 | 1,000-3,000명 | 5만~10만 대도시 |
| 후작 | 상비군 20-50명, 기사 5-15명 | 500-1,500명 | 3~5만 도시 |
| 백작 | 상비군 12-40명, 기사 3-10명 | 300-1,000명 | 2~5만 도시 |
| 남작 | 상비군 5-15명, 기사 1-3명 | 50-300명 | 1~5만 도시 |
편차가 큰 이유는 각 왕과 귀족들의 사정에 따라 크게 달랐기 때문.
중세 군대 편성
전형적인 중세 군대는 다양한 병력 유형으로 구성되었다.
- 가신단 (Household Knights): 전체의 1-2%, 귀족의 핵심 전력으로 상시 유지
- 기사 (Knights): 5-10%, 중장기병으로 봉건 의무에 따라 제공
- 맨앳암즈 (Men-at-Arms): 15-20%, 중무장 보병 또는 기병으로 계약 병력
- 궁수 (Archers): 30-40%, 장궁이나 석궁 전문병
- 보병 징집병 (Levy Infantry): 40-50%, 농민 징집병으로 단기 복무
- 용병 (Mercenaries): 가변적, 돈으로 고용하는 전문 병력
예를 들어 1,000명 규모의 군대는 기사 50-100명, 맨앳암즈 150-200명, 궁수 300-400명, 보병 400-500명으로 구성되었다.
영국군의 경우 맨앳암즈 대 궁수의 비율이 1:3이 일반적이었으며, 해군 원정대는 1:2 비율을 사용했다.
중세 유럽의 군사력은 봉건제의 구조와 경제적 제약에 따라 제한되었으며,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은 르네상스 이후에야 가능해졌다.
https://youtu.be/CPeGCy0BNzg?si=9K-D8C2NwtLU5fxX